2013년 4월 25일
1. 열차 안
눈을 떠 보니 흔들리는 열차 안이다. 한 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에는 의자도 없어서 나는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긴 채 반쯤 누워있다. 오른쪽과 맞은편에 나 있는 창문을 올려다보니 눈 부시다. 햇살이 찬란하니 희고 빛나는 반점들이 창에 투영된다. 그것이 아름답다 느끼는 순간 풍경을 향해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들었는데 셀카 모드로 되어 있어서 내 얼굴이 먼저 보였다. 나는 검은색 긴 머리에 빨강색 코트를 입고 있었으며 등 뒤로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액정에 비친 나를 포함한 그 풍경은 아주 황홀했다. 나를 두어장 촬영하고 카메라를 돌려 창문 밖을 향했다.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전신주에 전기줄이 거미줄처럼 매달려 있었다.
내가 탄 열차는 누가 운전하고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도 타고 있었을까. 사방이 창문으로 뚫린 그 열차가 어떻게 달렸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2. 술집 안
꿈에서 두번 째 가보는 곳인데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사람들은 꽉 차 있고 내부엔 ‘ㄷ’자 모양의 바 말고는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문득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죽음에의 강한 신호. 나는 친구 하나와 함께 얼른 그곳을 빠져나오려 했다. 입구를 나서니 앞에 사람들이 서 있다. 오른쪽에 서 있던 남자 하나가 명함을 건네며 스스로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라고 소개를 한다. 쌍커플이 짙고 풍채가 있는 남자였다. 나는 뒤에 오는 친구를 잡아끌며 절대 무엇도 대답하지 말고 또 접촉하지 말기를 당부했다. 그곳은 꽤 외진 구역이어서 안전한 곳으로 가려면 한참이나 걸릴 것 같았다. 늦은 밤이라 아직 버스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택시를 잡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택시조차 의심스러웠다. 그곳의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나는 내 옆에 있는 여자애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아무 것도 모른 채 파티를 즐기고 있는 젊고 가엾은 우리들은 금방이라도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2012년 11월 5일
1. 아산 집
가족들과 함께 살고있는 빌라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매캐한 갈색 연기를 보았다. 계단 통로 위를 부유하는 연기의 출처가 어느 곳인지 알아채려 애 썼다. 그리고 3층에 닿았을 때 비로소 그 연기가 우리 집에서 나고 있음을 알았다. 혹시 불이라도 난 건 아닐까, 문을 여는 순간 불길이 우리를 덮치면 어쩌나 두려웠다. 아버지는 연기가 건물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계단 통로의 창문을 닫으라고 했다. 남동생이 얼른 윗층으로 뛰어가 창문을 닫았다. 이윽고 문꼬리를 잡은 아버지가 천천히 문을 여는 순간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연기의 실체는 폭발한 냉장고 였다. 아버지는 문을 열자마자 어머니에게 “냉장고 문을 잘 닫았어야지.” 하고 말하셨다. 현관문 바로 앞에 냉장고의 문짝이 날아와 있고 그 뒤로 문을 잃은 커다란 냉장고가 보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지? 집 안에는 김치며 갖은 반찬들이 냉장고를 빠져나와 거실을 어지럽혀 놓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른 그것들을 치워야 한다며 청소에 착수했지만 나는 여전히 문 밖에서 멍하니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걸까를 고민했다.
2.
아는 언니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중이다. 언니가 운전을 하다가 곧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마음 속으로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이 약간 일었지만 생각보다 능숙하게 해 냈다.
꿈 속에서 운전하게 된 것은 꽤 한참이나 된 일인데 처음보다 훨씬 나아졌음을 느낀다. 그건 마치 현실에서도 어떻게든 운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착각하게도 만드는데 사실 꿈에서의 운전은 운전 상식보다는 ‘꿈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깝다는 것을 안다. 어쨌건 완전히 익숙하지 않음에도 나는 능숙하게 운전하는 꿈을 가끔 꾼다.
2012년 9월 6일
1.
낭만적인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놀이공원 안에 있다. (어떤 놀이기구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 했다.) 주변 풍경에 생기가 없는 걸 보니 겨울인 것 같았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그것은 생명이 달린 문제라기 보다는 하나의 놀이 같았다. 물론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몇 번인가 달리다가 아주 거대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무대가 있는 걸 보니 쇼가 상영되는 곳인가 보다. 지나가는데 놀이공원 측 사람들이 인형 탈을 쓴 채로 잔뜩 모여있다. 아마도 놀이가 너무 금방 끝났는지 아직 자신이 등장하지 못한 것에 뾰루퉁한 것 같다. 침울한 분위기였고 왠지 모를 불안이 감돌았지만 왜 ‘놀이공원에서의 놀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2.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체력장을 했다. 다른 것은 모두 끝나고 달리기 종목 2개만 남았다. 나는 오래 달리기의 순서가 되기를 기다렸다. 순간 학창시절을 회상했는데 총 소리가 울릴 때의 가벼운 몸 상태와 완주했을 때의 숨참을 기억하며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상상했다.
3.
아침 시간, 아산의 본가에 있다. 나는 고등학생인데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 중이다. 꿈 안에서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만일 학생이라면 그럴 만한 시간이 없을 뿐더러 고등학교가 있는 아산에서 서울까지 매일 오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쨌건 사실을 인지하고 확인을 해 봤더니 몇몇 친구들이 옷을 주문했다. 물론 친구들에게 가져다 줄 옷은 없었다. 학업과 사업을 어떻게 병행해야 할지 막막했다. 쇼핑몰 홈페이지에 ‘주 1회 배송’이라는 공지를 할까 고민했다.
학교에 입고 갈 옷을 고르러 방 안에 들어갔더니 침대 매트리스 위에 행거가 있다. 거기에는 겨울 옷들이 잔뜩 걸려 있는데 언뜻 보아도 독특한 것들이었다. 방은 온통 흰색이었고 침대와 옷 이외에는 색깔이나 무엇도 없었는데 옷걸이 바로 위 천장에서는 불투명한 검은색 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뭔가 옷을 골라 입긴 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고 우스꽝스럽다고 느껴졌다. 겨울 옷을 몇 개나 겹쳐 입었는데도 춥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더 적당한 옷을 고르려 자꾸만 애를 썼다.
2012년 9월 4일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고향의 어느 곳 같기도 했고 서울같기도 했다. 생경한 장소였다. 그 날은 루프 프로젝트에서 주최한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파티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참석할 생각은 없었는데 우연히 길을 지나다 파티 장소를 발견했고 문 밖에 서 있는 여자는 입장료가 무료가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혹시나 싶어 안에 들어가봤더니 진호 오빠가 보였다. 동굴같이 어두컴컴한 곳에 사람이 빼곡했는데 온통 정신 없었다.
밖에 나왔더니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양정희가 자신의 다른 친구와 있다. 그녀는 나한테 오더니 파티장 가운데서 만나기로 하지 않았냐고 따졌다. 난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었기에 황당했지만 그녀는 내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며 나에게 액정이 깨진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왜 이렇게 됐냐고 화를 내다가 그냥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진호 오빠를 만났는데 우리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줬다. 일행이 몇 명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산해야 할 아이스크림 개수가 꽤 많았다. 그런데 값을 계산해야 할 아주머니가 계산을 너무 못 했다. 답답해서 내가 암산으로 계산을 하다가 복잡해질 때쯤 핸드폰으로 메모장을 켰다. (왜 계산기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 것인냥 휴대폰 바탕화면 아이콘 배열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결국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지 못 했다.
2012년 8월 19일
1.
인도로 생각되는 곳을 단체 여행 중이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중 한 남자와는 가까웠던 사이였다. (혹은 내가 그를 꿈 안에서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동을 위해 승합차에 올랐는데 문 바로 옆에 중년의 여자 셋이 쪼르르 앉아서 나는 뒷자리로 갔다. 아직 사람들이 더 타야 했다.
곧 차에서 내려 다같이 어디론가 이동을 했다. 길거리는 온갖 사람들로 혼잡해서 까딱하면 일행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다. 나는 길을 걷다가 홀로 무엇인가를 판매 중인 까무잡잡하고 깡 마른 할아버지 앞에 잠시 섰다. 무엇인가 물건 하나를 얼른 사 가려고 했는데 가격이 1700원인가 1200원 이란다.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는데 화폐 단위를 알기 힘든 외국 동전들이었다. 아마 그 나라의 것이겠지. 어쨌건 꺼내는 동전마다 계속 틀린 수가 나와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하는 수 없이 나오는 동전을 하나씩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는데 그는 친절하게 동전 하나하나에 대해 역사며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얼른 일행을 따라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이야기가 재미있고 거절하기가 싫어서 그걸 언제까지고 듣고 있었다. 계속해서 동전들은 수 단위가 맞지 않아 돈 계산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다시 차 안에 다 같이 앉아 어디론가 이동 중인데 위험에 처한 것 같다. 창 밖으로는 숲도 늪도 아닌 무엇인가가 보였는데 누군가 우리들은 거기로 가야만 한다고 말 했다. 그 곳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 같았고 우리들은 억지로 끌려가는 포로들이었다.
2.
고층 쇼핑몰들이 늘어선 사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데 태국이나 중국같았다. 우리나라의 동대문처럼 복잡한 분위기 였다.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걸었다. 까르푸인지 세이렌인지 하는 커다란 간판이 걸린 쇼핑몰을 지났다. 슬슬 인적이 드물어지더니 동네 골목길 같은 분위기인데 격자 모양으로 길이 나 있다. 왼쪽에는 작은 닥터마틴 매장이 있었는데 꿈 속의 나는 ‘흑석동에 닥터마틴이 있다니 나중에 가 봐야겠네!’ 하고 생각했다. 아마 그곳은 꿈 속의 내가 살고있는 동네인데 현실에서 ‘흑석동’에 사니 딱히 부를 이름이 없어 그렇게 나온 것 같다.
드문드문 상점이 있는 그 길들을 지나 이제 주택가가 나왔다. 집들은 하나같이 예뻤는데 연한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곡선이 아름다우며 아주 깨끗했다. 집들이 참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그곳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길의 끝에 가면 내가 사는 빌라가 나온다. 아름다운 집들이 모여있는 구역이 끝난 뒤의 약간은 폐허같은 분위기의 건물 하나가 있는데 거기가 내 집이다. 흰색 직각 건물인데 빌라치고는 방이 꽤 많아서 꼭 병원같은 분위기다. 건물 바로 오른쪽에는 도로가 나 있어서 혹시 차들이 다니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내부에는 진한 붉은색에 페르시안 문양이 그려진 커다란 카페트가 깔려져 있었고 가구는 진한 밤색이었다. 그곳은 오래된 듯 더러웠고 주변에 아무도 살지않는 듯 고요했다.
2012년 8월 16일
다니고 있는 회사의 1층 카페인데 통유리를 통해 내부를 들여다 보니 사뭇 다른 느낌이다. 입구 왼쪽에 계산대가 있고 그 안쪽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점원들도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 중 눈이 큰 여자 점원과 무슨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손에는 패스트푸드점 콜라 컵을 들고 있었는데 남자 점원은 리필을 해 주겠다며 따뜻한 커피를 잔뜩 담아줬다. 컵을 받아 들고는 다시 일을 하러 사무실로 올라갔다.
금방 일을 마치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무언가 계속 일이 생겼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곤란해하며 새로운 일을 처리하기 위해 회사 1층 문 밖으로 나갔다. 회사는 아주 고층 건물이었는데 입구가 정사각형 면의 중간 쯤에 나 있어서 위를 올려다 볼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모르는 길이 나 있고 뒤쪽은 한번 가본 적이 있는 길이었다. 어쨌건 주변은 휑 했고 회사 건물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홀로 우뚝 서 있었다. 갔던 기억이 있는 뒤쪽으로 갔다. 길 건너편에 가로수가 쭉 늘어서 있다. 건너편으로 건너서 왼쪽으로 뛰었다. 얼마 가지않아 길의 오른쪽에 엄청난 오르막 길이 보였다. 꿈 속에서는 거길 ‘이태원’ 이라고 불렀다. 힘들게 오르니 또 오른쪽에 말도 안 되게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이전에 와 본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계단들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말하자면 그 계단부터는 달 동네 같은 것인데 예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고 유명했던 것이다.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 여자아이들과 함께 계단에 앉아있는데 계단 폭이 너무 좁아서 아래로 몸이 떨어지지 않을까 공포스러웠다. 나는 거의 매달려 있는 수준이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바지를 짧은 것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조금 오르막 입구 쪽으로 가니 오른쪽에 완만한 골목길이 나 있는데 바로 왼쪽의 건물로 들어가보니 1층에 바로 화장실이 있다. 정면에 남자 화장실, 왼쪽은 여자 화장실 표시가 되어 있다. 그런데 왼쪽 문을 여니 거대한 로비가 보인다. 아주 넓었으며 바닥은 대리석이고 정장을 차려입은 남녀가 분주히 고객들을 응대 중이다. 한 켠에서는 머리모양을 손 보고 있었고 공간 중의 일부만이 화장실이었다. 말하자면 화장실 안에 남자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것이라 조금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조금 걸어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니 화장실 내부가 길쭉하다. 한 쪽에는 정장을 입은 여자 점원이 무언가 시중들 일이 없는지 기다리는 것 같았다. 뭔가 이상한 곳이구나 느끼고 바지를 벗었는데 갑자기 들고있는 무전기로 ‘10번 화장실로 와 달라’는 말을 했다. 곧바로 늙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중요한 건 내가 바지를 벗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뭔가 오해가 생겨 나를 도둑으로 여기고 매니저 급의 사람을 부른 것 같았다. 죄가 없는 나로서는 너무나 화가 났고 무엇보다 수치스러웠다. 여자 점원이 들고 있는 내 갈아입을 바지를 얼른 받고 싶었다. 그녀에게 ‘바지 내놔!’ 하고 소리를 질렀다.
2012년 8월 9일
(꿈의 마지막 부분 일부의 기록)
도곡동의 한 골목을 걷고 있다. 2년여간 회사를 다니며 자주 지나다녔던 곳이다. 실제로는 사무실 용도의 빌딩과 식당, 술집 따위가 늘어선 곳이었으나 꿈 속에서는 마치 음울한 주택가처럼 느껴졌다. 길의 왼쪽 주차장에는 샐러드 볼같이 생긴 투명한 유리 그릇이 잔뜩 버려져 있다. 다가가 살펴보니 그릇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고개를 돌려 뒷편 위를 올려다 보니 건물 창문으로 한 아주머니가 그릇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릇 쓰레기의 출처는 그녀였다. 혹시 나를 발견했을까 싶어 머슥해진 탓에 몇 개쯤 집으로 가져갈까 생각했던 그릇들을 뒤로 하고 다시 앞으로 걸었다.
왼편 건물에 문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홉시 오빠가 보인다. 새로 구한 작업실인 것 같았다. 공간을 그리 넓지 않았고 안락한 느낌이 없었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의 모습이었다. 집을 잃은 사람의 임시 피난처같기도 했다. 딱히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그 애매모호한 공간에 잠시 머물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홉시가 아니라 아버지가 서 있었다. 어머니도 없이, 집도 없이 그 홀로 그 곳에서 지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가 나오는 꿈은 언제나 슬프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는 아홉시와 아버지는 닮은 구석이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피부의 질감이나 마른 몸 같은 것들이.
2012년 8월 5일
(저녁에 잠시 1~2시간 정도 잠이 들었었다. 이 배경은 두 번째인데 이전 꿈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주변이 어두운 시간이었고 여자 네명이 산을 오르고 있다. 근처에 나무 같은 것은 없었고 자연 그대로의 산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산인 것 같다. 그 중 나는 가장 젊은 여자였다. 키가 크고, 금발인 머리는 잘 묶었으며 중세시대 메이드 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내 얼굴과 다르다. 어쩌면 나는 절대자로서 그 광경을 지켜봤는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걷던 늙고 뚱뚱한 여자 하나는 이야기 도중 이전 주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 대한 농담을 했다. 만약 그 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이 거짓이라면 난 그(이전 주인)를 그리워하겠어요! 라고. 그러자 뒤 따르던 여인이 폭소를 터뜨린다. 그녀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내 앞에 걷던 늙고 날씬한 여자가 쯧쯧 혀를 찬다. 그녀는 내 편임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내 뒤로도 남자들 몇 명이 올라왔다. 그 중 하나는 아주 나이가 어린 소년이었는데 생김새가 꼭 영화 <나홀로 집에>의 맥컬리 컬킨 같았고 대신 헤링본 소재의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그는 흰색 헐렁한 셔츠에 조끼, 통이 넓지만 아랫단이 조여진 7부 바지를 입고 있다. 뒤 따르는 나이 많은 남자들도 비슷한 복장이었다. 아마 우리들은 모두 적어도 귀족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남자들 중 누가 나를 도울 수 있는지 고민해봤는데 그 어린 소년이 나를 좋아하던지 자신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무시했지만 곧 ‘무언가’ 이루어지고 그와 내가 나란히 누워있는 장면이 연결되었다. 나무 바닥에 여유롭게 누워 ‘무언가’ 일이 성사되었음을 기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보다 훨씬 몸집이 작은 그의 볼에 입을 맞췄고 그는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때 나는 머리카락이 짧고 검었으며 얼굴은 마치 영화배우 임수정 같았다.
‘무언가’란 이전 주인을 위한 일 중의 하나였다.
‘이전 주인’이라는 사람은 아주 키가 크고 날씬한 중년 남자다. (꿈에서 그를 직접 보지 못 했지만 회상할 수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꽤 긴 편이라서 테리우스 내지는 백작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거대한 성을 가진 부자였는데 (비록 성은 아주 낡았을지라도) 어느 날 홀연히 성을 버리고 사라졌다. 만일 우리 모두가 그를 시중드는 일을 해 왔다면 좀 전에 여자들이 그를 무시하고 웃음거리로 만든 일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했다. 어쨌건 나는 그를 인간적인 호의로 대하고 있었으며 그의 의도(꿈 밖의 난 그것을 알 수 없지만)를 존중했다.
낡은 성은 어둠 속에서 짙은 초록색을 뿜었다. 아주 거대했지만 그곳 안에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성의 한 방에서 창 밖을 바라보는 중이다. 그리 크지 않은 방이었는데 내 뒤로 커다란 식탁이 놓여져 있다. 창 밖에는 물을 가둬놓은 풀장이 있는데 몇몇 사람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나는 갑자기 그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꿈 안에서 상상을 하기 시작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내게 죽음을 안겨 줄 누군가가 서서히 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 오래 전 영화 <판의 미로>에서 보았던 장면을 상상했던 것 같다. 실제로 긴박함이나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나는 몸을 던졌고 풍덩 하고 물 안에 빠졌다. 아니, 아주 짧은 시간일테지만 떨어지면서 나를 구해 달라고 이미 물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쳐야 겠다, 그리고 입수 전에 숨을 크게 들이 쉬어야 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창 밖을 바라보면서 무서운 존재와 입수에 대해 생각한 것은 실제인지 꿈 안의 상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나는 그를 그리워 했다. 꿈에서 깨어난 지금은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전 주인!
7월 12일
소설 <혀 끝에서 맴도는 이름>이 재현되었다. 아주 오래 전에 외국 사람들이 살 법한 집에 나와 남편이 살고 있다. 밤이 오면 등불을 켜고 벽의 구분 없이 작은 한 공간 안에 사람들이 사는 집이었다. 40일 후 찾아온 이는 나를 데려갔는데 (결국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다만 혀 끝에서 이름이 맴돌 뿐.) 그와 함께 여행을 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그의 아들 몇명을 지나치기도 했다. 그런데 여행 중 만난 풍경은 마치 한국의 조선 시대 모습 같았다.
그러다가 붉은 입술 소년의 스쿠터 뒤에 타고 여행을 했다. 물빛이 영롱한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왼쪽으로 펼쳐졌다. 우리는 절벽같은 곳을 달리고 있었는데 그 곳의 길은 아스팔트가 아니었고 나는 그의 허리를 두 팔로 감은 채 고개를 왼쪽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 여행에 대해 회사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전 남자친구랑 갔다’ 이라는 대답을 했고 내가 한 말에 대해 스스로 놀랐다.
확장된 공간으로서의 중앙 대학교에서 일어난 꿈들.
2012년 7월 8일
어떤 용도의 공간인지 잘 모르겠다.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데 식당같기도 하고 강당같기도 하다. 나와 정진, 그리고 또 한명의 친구가 그 공간의 문 앞에 앉아있다. 문은 우리 오른쪽에 있었는데 낡은 미닫이 식이었다.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 역시 교회에서나 쓸 법한 니스가 잔뜩 칠해진 작은 나무 의자였다. 곧 후배 하나가 들어왔다. 신입생 남자였는데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와인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몸은 말랐으며 진한 카키색 크로스 백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다. 그는 우리와 인사를 하고 나와 무어라 더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가 왜 벌써 반말을 하냐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더니 미안하다며 역시 웃으며 응수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나는 아직 한 번 밖에 만난 적이 없었고 실은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친구들은 그가 이미 서른을 넘겼다고 말해줬다. 저렇게 어려 보이는 사람이 서른인 것에 놀라워하며 혹시 진짜 학생이 아니라 스파이 같은 역할은 아닐까 라며 농담조로 이야기를 했더니 옆에서 정진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대답을 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화 했다. 나는 꿈 속에서 왠지 그를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